뜨거운 피(Hot Blooded) - 부산 느와르 영화, 실관람평/스포주의

출처: 구글 뜨거운 피

• 제목: 뜨거운 피 Hot Blooded
• 감독: 천명관
• 개봉: 2022. 03. 23

 

구암을 차지하는 왕은 누가 될 것인가

 

 구암은 아주 오랫동안 '손 영감(김갑수)'을 주축으로 다스려지고 있었습니다. 영화 <뜨거운 피>는 주인공인 희수의 시선을 통해 작은 표구 구암을 차지하기 위한 조직들 간의 전쟁과 후폭풍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뜨거운 피>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둡고 쓸쓸한데, 특히 영화 오프닝이 의미심장합니다. 바다 한 복판에 떠 있는 배에는 부산 조폭 세력의 우두머리가 되는 자들이 앉아있습니다. 그중 주인공인 희수는 분노 가득한 표정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함께 테이블에 앉아있던 깡패 용강이로부터 권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런 희수에게 남 회장은 그 권총으로 뭘 지키고 싶은지 물어보니, 옛날에는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은데 하도 더럽게 살다 보니까 잊어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화면은 전환되어 그가 손 영감 밑에서 일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손 영감의 행동대장이었던 '희수'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순찰하고, 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호텔 '만리장'을 감독하는 일을 하고 있어 시민들에게 친밀한 존재였습니다. 평소와 같은 날들이 지속되던 중 용강(최무성)이 빨래 공장을 차지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용강은 손 영감을 대신하여 온 희수에게 빨래 공장을 통해 뽕을 공급, 배달, 판매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일로 손영 감과 희수에게 책임이 가지 않도록 할 테니 굿이나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희수에게 송 영감과 다를 줄 알았지만 똑같이 보수적이라며 자극합니다.

 

 사실 희수는 나이가 들도록 손 영감을 위해서 일하다 큰돈을 만져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빚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송 영감에게 돈을 못 버는 부분이 아쉽다고 하소연합니다. 하지만 송 영감은 약에 대해 절대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양동이를 만나 전자 오락실 사업에 동업할 것을 제안받았습니다. 언제까지 송 영감 밑에 붙어있을 건지, 송 영감은 이제 잘 먹고 잘 사니 더 이상 험한 일은 안 할 거라 조언합니다. 희수는 영도파 조직 에이스이며 친한 친구인 '철진'을 만났습니다. 그는 희수와 대화 중 더 이상 이곳엔 먹을 것이 없다 이야기를 하는데 희수는 이를 듣고 애써 부인하며 철진이 영도파 조직에 몸 담은 것을 비꼽니다. 이렇게 희수를 향한 일련의 회유의 손길이 이어집니다.

 

 사실 그의 꿈은 어릴 적부터 짝사랑한 인숙과 돈을 벌어 구암을 벗어나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인숙은 어린 아들 '아미'가 있었는데, 의리 있지만 똘끼 있는 건달이었습니다. 아미는 친구들과 양동이의 요청으로 업소에 보드카를 운반하는 일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 중 희수는 만리장에서 한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용의자를 저지하게 됩니다. 배후로 용강이 유력해 보였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송 영감의 지시를 받은 희수는 옥 사장을 찾아갑니다. 희수는 옥 사장에게 용강이 숨긴 마약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면 옥 사장을 살려주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희수는 옥 사장이 마약의 위치와 비밀번호를 이야기하자마자 죽여 입막음을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세탁 공장으로 경찰들이 체포하러 들어갔습니다. 정우가 경찰에 용강 패거리를 팔았던 것입니다. 용강은 얼마간의 형을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정우는 옥 사장에게 알아낸 마약을 따로 숨겼는데, 정우는 점점 더 손에 피를 묻히게 되어 갑니다. 희수가 처리한 옥 사장 장례식이 열리고 구암을 노리는 영도파와 손 영감을 중심으로 한 구암 패거리들이 모여 신경전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깡패 생활 그만하고 평범하게 돈 벌고 싶었던 희수는 손 영감에게 만리장 일을 그만두고 양동이와 오락실을 해보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손 영감은 불호령을 내리며 때가 되면 자신의 사업도 넘겨주지 않겠냐 회유하지만 희수는 이미 마음을 정했습니다. 양동이와 희수가 동업한 오락실은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희수는 돈을 충분히 벌어 이곳을 뜰 생각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희수가 20년간 짝사랑하던 '인숙'의 아들 '아미'와 그의 동료들, 오락실이 영도파에게 습격을 당한 것입니다. 습격당한 현장을 보고 양동이와 정우는 영도파와 전쟁 여부에 대해 결정하면서 균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양동이는 영도파 회장의 조카를 죽이게 되고, 영도 파는 협상 테이블에서 살인 여부에 대해 책임 대신 오락실 사업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달라 요구합니다. 희수는 일을 거절하면서 영도파와의 전쟁 여부에 고민하게 됩니다.

 그런 그에게 송 영감은 싸움은 망설이는 자가 진다는 조언을 합니다. 희수는 먼저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그런 중 철진은 자신을 공격하는 희수에게 그가 손 영감 말에 휘둘려 전쟁을 시작한 것이고 사실은 남 회장이 양동이의 뒷배였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희수는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새로운 선택을 했었지만 두 세력의 싸움 가운데서 늘 휘말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희수로 인해 감옥에 들어갔던 용강은 일찍이 감옥에서 나와 자신의 빨래 공장을 다시 찾게 됩니다. 용강이 다시 나오자 겁에 질린 양동이는 더 이상 사업하기 어렵다 말합니다. 희수는 다시 용강을 보러 가는데, 용강은 희수를 보고 손 영감을 죽이고 구암의 주인이 돼라 이야기합니다. 용강은 희수를 보고 본인과 닮았다고 이야기하는데, 자기와 같은 스타일 자신을 증오하면서도 남은 부러워하지 않으니 밑바닥으로 가거나 가장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며 말합니다. 그리고 희수는 어떤 선택을 한 것인지 물으며 크게 웃습니다.

 

 한 편 희수를 아버지라 부르며 잘 따랐던 아미는 쟈신의 여자 친구가 한 남자로부터 폭행당한 것을 알고 보복하러 갑니다. 폭행한 남자의 이름은 동칠로 아미는 결국 그 패거리로부터 공격당했습니다. 그를 찾으러 다녔던 희수는 죽음을 앞둔 아미를 발견하게 되고 아미는 자신을 찾아온 희수에게 엄마를 부탁합니다.

 

 며칠 뒤 선상에서 희수와 영도파 사이의 재협상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그 때마침 희수는 철진의 계략으로 인해 아미가 죽었음을 알게 되었고, 영도파 대표로 온 철진과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됩니다. 하지만 철진은 희수를 제압하고 동행한 자기 윗 선을 죽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정신이 든 희수에게 철진은 만약 아미가 죽지 않았다면 희수가 죽어야 했을 거라 이야기하며 아미의 일을 사과합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을 철진이 그린 것이냐는 희수의 질문에 철진은 이 그림은 다 같이 그린 그림이라 답합니다. 그런 그에게 우두머리가 되고 싶은 것인지 물어보니 본인은 그런 자리에 관심 없고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철진은 희수에게 말 리장으로 돌아가 구암을 맡아달라 요청합니다. 철진과의 싸움으로 부상당했던 희수는 송 영감이 칼에 맞은 사실을 들었습니다. 

 아들 아미가 죽자 사랑하는 그녀는 희수를 떠나버렸습니다. 아미의 복수를 하고 싶었던 희수는 용강을 찾아가 이전에 자신이 찾아 숨겼던 뽕을 전달하며 거래를 요청합니다. 희수의 복수를 도와달라는 요청이었는데 그의 복수는 앞서 오프닝에 부산 조폭 세력들이 모여있던 선상을 배경으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용강이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희수에게 권총을 선물한 데는 이런 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희수는 자신에게 무엇을 지키고 싶냐고 물었던 영도파 조직 남 회장과 자신을 속였던 양동이, 절친이었던 친구까지도 사살합니다. 희수는 복수를 마무리한 뒤 그 자리에 있던 천 회장을 파트너로 삼습니다. 돌아온 그가 한 일은 병실에 누워있던 손 영감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희수는 곧 호텔 만리장을 접수합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이 영화는 김언수 작가의 소설인 <뜨거운 피>를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작가의 권유로 천명관 감독이 메가폰을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화를 실제 관람하면 다소 빠른 전개를 위해서 생략된 부분이 많아서 집중력이 약해지면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들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불어 많은 인물이 등장하기에 헷갈리시는 부분도 있을 듯합니다.

 

 주인공 희수를 맡은 배우 정우는 실제 부산 남자로 그의 경상도 사투리는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그가 조금 더 희수 역에 몰입할 수 있었겠단 생각이 듭니다. 이와 함께 영화에서 용강 역할을 맡은 최무성의 사이코틱한 조폭 연기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소름 돕게 합니다. 이홍내가 연기한 아미는 특유의 재기 발랄함이 돋보입니다.

 영화는 1993년 범죄와의 전쟁 이후 갈 곳을 잃은 조폭들이 부산의 한적한 포구인 구암에 모여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영화 속 조폭들은 일반 누아르 영화와 달리 미화된 조폭이나 건달들의 모습보단 현실을 살아가는 조폭들의 감정과 생각 마음을 그렸습니다 다. 천명관 감독은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조폭들의 모습과 살기 위해 뭐든지 하는 밑바닥 인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구암 외에 다른 곳으로 더 갈 데가 없는 세상의 낮은 곳에서 있으나 그곳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야 했습니다. 영화 <뜨거운 피>는 이런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전해주어 기존 영화와 차별성을 보여줍니다.

 

구암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영화는 전반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전개됩니다. 영화를 보고 조폭들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작은 왕국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정해진 구역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는 모든 것을 다 갖지만 패한 자는 목숨까지 잃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는 전쟁터인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배신하고 뒤통수치는 일들이 허다하게 일어나는 구암에서 그들은 오늘도 살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그 몸부림 속에서 우리의 주인공인 희수는 아주 높은 곳에 올랐습니다.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되었지만,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그저 하루를 살아갈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 용강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생각합니다. 자신은 저 밑바닥으로 한 없이 내려가거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며, 둘 다 외로운 자리지만 또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이죠.

 

 이는 단순히 조폭들을 대상으로 한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도 어쩌면 이미 또 다른 구암에서 경쟁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경쟁이라고는 하지만 때로는 서로를 이기고자 보이지 않는 피를 흘립니다. 돈과 명예, 권력이 목적이 되어 우리가 사람이길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수단이 되었을 때 최소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지킬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본 누아르 영화라 굉장히 즐거웠습니다.